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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명령 | [원희복의 인물탐구] 문성근 "과도내각 총리 국민배심원·온라인 투표로 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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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민의명령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11-21 17:39 조회10,5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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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상훈 선임기자

[원희복의 인물탐구] 문성근 “과도내각 총리 국민배심원·온라인 투표로 뽑자”

연극이면 연극, 영화면 영화, 방송이면 방송, 정치면 정치, 시민운동이면 시민운동 등등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열정적이다. 그를 보면 마치 찰고무 공처럼 통통 튀고, 질긴 ‘미제 노란 고무줄’같이 집요하다.


그는 문성근이다. 그는 일찌감치 ‘100만’이라는 숫자에 매달렸다. ‘100만 민란 프로젝트’ ‘백만 송이 국민명령’ ‘100만인 서명운동’ 등등. 요즘 그는 주말마다 벌어진 광화문 촛불시위 현장을 지켰다. 그리고 ‘11·12 민중총궐기’ 당일 오후 7시30분, 드디어 100만 시위 인파 발표를 들었다. 그가 그토록 천착했던 ‘100만 민란’, 그것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희망과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희망은 박정희 시대가 끝나는 소리다. 그리고 노동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진 것 같은 반가움을 봤다. 이는 국민들이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알아가는 것으로, 구조개혁의 가능성이 보인다. 걱정은 이 시민혁명을 정치권이 제대로 받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1987년 6월항쟁으로 국민이 뒤집었는데, 야당이 분열돼 개혁의 기회를 날렸다. 지금 야당은 이미 분열돼 있고, 개헌을 고리로 더 분열될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이 잘 받지 못하면 정치혐오를 부추겨 포퓰리즘이 파고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안감이다.”

지금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파문 등 야당이 만족스럽지 않다. 해외 혁명사를 보더라도 혁명의 불을 붙이는 것은 쉽지만 마무리가 어렵다. 정치권이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박근혜는 하야할 수밖에 없고 어차피 과도내각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총리는 거의 임시 국가지도자인데, 야 3당의 합의가 어려울 것이다. 야 3당과 이번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시국회의 4곳이 각자 후보를 추천하면 배심원단 같은 것을 만들어 이들 의견 50%, 이미 개발된 온라인 투표 앱을 통해 국민투표 50%를 통해 총리를 결정하면 어떨까.”


여당은 어떻게 될까.
“보수의 재구성이 일어날 것이다. 새누리당에서 극우정당이 만들어져 보수정당과 차별돼 4당 체제가 되지 않을까. 보수는 너무 오래 반북(反北)정치를 해 선회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각제가 아닌 대통령제는 당분간 유지돼야 한다고 본다.”


그가 줄기차게 주창하는 ‘100만 민란’은 기득권에 얽매인 정치를 시민참여 정치로 바꾸자는 것이다. 2010년 ‘국민의 명령’이 그랬고,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시민의 날개’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지금 만들고 있는 시민의 날개(현재 이사이다)는 내년 정권교체를 위해 민주·진보진영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결합한 정치운동 플랫폼이다. 마침 이 시민의 날개의 중요한 축인 ‘일파만파’가 16일 오픈했다.


“시민의 날개 기능에는 크게 조직(커뮤니티)과 뉴미디어, 캠페인·청원, 정책 생산 등 4개 카테고리가 있다. 내년 정권교체가 있어 조직화가 우선이고 마지막 단계가 정책 생산이다. 현재 조직화는 80%가 됐고, 왜곡된 뉴스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뉴미디어 ‘일파만파’도 만들었다. 일파만파는 3000명의 시민편집단이 다양한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구조다. 종편이나 포털에서 왜곡된 뉴스를 볼 필요가 없다. 여기에 보수언론의 어젠다 세팅을 저지하는 집단지성 기능도 추가할 것이다. 정책 생산 기능은 대선 이후로 미뤘다.”


아무리 좋은 플랫폼도 시민의 참여가 중요하다. 시민의 날개 페이스북은 ‘좋아요’가 3600여명 수준이다. 회원이나 시민 참여를 대폭 늘려야 하지 않을까.
“시민의 날개 후원회원도 있고, 과거 국민의 명령 회원도 있다. 시민의 날개에 들어와 보는 사람은 10만명 정도 된다. 지난 총선에서 부정선거 감시단에 4000명이 모였다. 내년 대선까지 6만명을 모을 계획이다. 기꺼이 일파만파 앱을 깔아 보겠다는 사람은 50만명은 될 것이다. 그러면 국민의 1%는 양질의 뉴스를 본다.”

문성근 '시민의 날개' 이사가 류창열 시민의 날개 집행위원장과 함께 '11·12 민중총궐기'에 참여하고 있다. / 시민의 날개 제공

시민혁명을 정치권이 제대로 받아내야
그는 시민정치운동은 계기가 있을 때 이를 받아들이는 툴(도구), 이 둘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코어(핵심)는 선거 투·개표 감시이고, 이후 일파만파를 통해 소비자가 유입되고, 대선 캠페인이 시작되면 또 회원이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대선까지 계속 계기가 있을 때마다 시민의 날개가 바로 그 툴(도구)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2012년 민주통합당을 만들며 실제 온·오프 정당 통합을 시도하지 않았나.
“그때 온·오프 정당을 만들자는 합의문까지 썼다. 그러나 대선 끝나고 김한길 대표체제 때 폐기됐다. 다시 문재인 대표 때 하겠다고 했고, 추미애 대표도 공약했다. 부분적으로 온·오프 정당을 준비하고 작동도 시켰지만 지속되지 않았다. 그것은 ‘시민이 참여하면 친노에게 유리하다’는 정파의 유·불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민참여 정치는 진짜 친노에게 유리한가.
“안타까운 접근이고, 잘못된 분석이다. 이재명 시장, 박원순 시장이 친노인가. 그들이 왜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가. 그들이 시대정신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한명숙·이해찬·문재인이 대표가 된 것은 그때 시대정신에 맞았기 때문이다. 아쉬운 국면이 많다.”


그는 가장 아쉬운 사람이 안철수 의원이라고 했다. IT 전문가인 데다 젊고 정치 혐오증을 가진 사람이 그의 주된 지지층이어서 바로 이 온·오프 정당에 제격이었다. 그가 안 의원에게 세 번이나 온·오프 정당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안 의원에 대해 “이제는 늦었다”고 말했다.


지금 추진 중인 시민의 날개는 민주당과 관계가 없다. 그는 “시민들이 정당에 입당하는 것을 꺼려하는 측면이 있고, 또 공무원이나 언론인같이 법적으로 정당 가입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서 “시민 주도의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성근은 195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그 유명한 문익환 목사(1918~1994)다. 문 목사는 한신대 교수를 하다 1980년대 재야운동단체인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장,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고문, 1990년대에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6번 투옥돼 11년 3개월의 감방 생활 등, 평생 민주화·통일운동가로 살았다. 문 목사는 미국 유학 중 6·25가 나자 문관으로 자원입대해 일본 도쿄에서 참전 미군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이때 문성근을 낳았다.


그는 서강대 무역학과를 나왔다. 그는 2년 선배인 박근혜 학생을 먼 발치에서 봤다고 했다. 기자의 ‘무역학과를 나와 왜 배우가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하하하~” 하며 한참을 웃었다. 오랜만에 ‘옛날 얘기’를 하기 때문인 듯했다. 대학 때 연극을 했지만, 연극으로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안 그는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처럼 쓰이다 마모되면 버려질 것이 뻔한 처지’를 깨달은 그는 ‘한 번 태어난 생인데 내가 판단하는 삶을 살자’는 생각에서 건설회사를 뛰쳐나왔다.


“나는 운이 좋았다. 극단 연우무대에서 1985년 <한씨연대기>로 데뷔했는데, 그해 최고 히트작이었다. 이어 <칠수와 만수>도 최고 흥행작이었다. 1989년 첫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이 그해 모든 영화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그가 진행한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시사방송 사상 최고의 히트작이었다. 점유율이 평균 40%가 넘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서강대 출신, 박근혜가 2년 선배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은 대학에서 시위를 주동하다 도피한 주인공이 탄광촌 잡부로 일하면서 겪는 대학 시위와 노동문제를 다룬 영화다.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3회 수상 경력이 말해주듯 그의 연기는 치열하면서도 열정적이다. 그런 그가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은 의외다.


운보다 연기를 잘했기 때문 아닌가.


“처음 연극을 시작한 연우무대는 사실적 연기를 추구하는 집단이다. 나는 가정환경상 정치적으로 압박당한 사람을 잘 이해한다. 게다가 1987년 시나리오에 대한 검열이 없어지면서 다양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을 맞았다. 연기패턴 변화와 정치환경 변화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운이 좋았다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가졌나.
“대학 때 운동은 열성적으로 안 했다. 문 목사(그는 부친을 꼭 이렇게 지칭했다)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인간 범주를 넘는 사람’으로 느껴져 감히 따라갈 수 없었다. 나는 나대로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받은 밥상머리 교육은 온통 나라 걱정과 통일이었다. 배우를 했지만 감옥에 있는 문 목사 심부름을 하면서 구속자 가족의 대변인으로 현실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문성근 하면 곧 노무현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왜 노무현을 좋아했나.


“하나는 인간적 매력이다. 5공 청문회를 보면서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문 목사에 대한 죄스러움이다. 문 목사의 생애에 시빗거리는 없다. 그런데 딱 하나, 1987년 민통련 의장으로 있을 때 왜 양 김의 분열을 막지 못했나가 있다. 그때 극도로 악화된 지역감정이 지금까지 발목을 잡고 있는 거다. 노무현은 그런 지역구도를 깨겠다고 나선 사람이다. 문 목사의 아들로서 그런 노무현을 돕는 것이 문 목사가 87년 분열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국민적 사과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87년 양 김의 분열은 뼈아픈 것이었다. 흔히 87년 체제 문제로 단임제와 제왕적 대통령제를 들고 있지만, 보다 큰 문제는 민주·진보진영의 철저한 분열이었다. 그는 ‘부친이 남긴 부채’를 갚기 위해 지금도 뛰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부친이 남긴 부채’를 진 박근혜 대통령과 유사하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두 사람을 비교해 ‘아버지에게 갇혀 얻은 힘’(박근혜)과 ‘아버지를 열어 만난 세상’(문성근)이라고 평가했다. ‘갇힌 사람’과 ‘연 사람’의 차이라는 것이다. <정혜신의 심리평전Ⅱ>


문 목사는 통일을 위해 온몸을 내던진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 통일을 얘기하는 정치인, 정당이 거의 없다.
“흠흠흠….”(유쾌한 웃음이 아닌, 허탈한 웃음이다)


왜 쓴 웃음을 짓나.
“표를 받기 위해서겠지. 문 목사가 1989년 평양에 간 이유는 동서냉전이 끝나가는 상황에서 ‘남북이 손잡고 가자’고 김일성 주석과 합의하러 간 것이다. 문 목사가 평양을 다녀와 ‘통일은 됐어’라고 했는데, 그때 이 말을 이해 못했다. 그러나 통일은 작은 교류에서 시작하는 ‘긴 과정’이라는 의미였다. 통일은 과정이다.”


박근혜 정부의 종북몰이에 모두 종북 프레임에 갇혔다. 어떻게 탈피해야 하나
.


“정면으로 맞받아 쳐야 한다. 핵심 논리는 경제로 가져가야 한다. 한국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이 뭔데? 보수에게 말하고 싶다. 증세 없는 복지 하겠다고 했는데, 국가부채만 늘려놨잖아. 해결책은 남북관계 개선밖에 없다. 너희들이 북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경제를 망치고 있다. 통일대박, 통일미래 다 맞다. 그러니까 통일하자. 통일 방법론만 논의하면 된다.”


영화감독 이창동은 문성근을 ‘돈·지위·권력에 초연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기자가 ‘인생의 가치가 뭔가, 정치를 바꾸는 것인가, 국민 선동인가, 대통령 하야시키는 것인가, 무언가’라고 물었다.


그는 “허허허… 대통령을 끌어내린다고 뭐가 달라지는가”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서로 아끼는 공동체, 더불어 사는 공동체 뭐 그런 거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다시 ‘스스로 배우·선동가·정치가·혁명가 어느 쪽이 더 어울린다고 보나’라는 질문에 “뭐 그냥 시민정치운동을 하는 배우다. 거기서 배우에 방점을 찍어달라”고 말했다.

<원희복 기자 wonh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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